합동군사대학교

문화재

영월암 마애여래입상 (映月庵 磨崖如來立像)

- 소재지 : 이천시 관고동 438

- 지정번호 : 보물 제822호

- 재료 : 영월암

- 규모 : 높이 9.6m / 어깨폭 3m

- 시대 : 고려시대

- 지정일 : 1984. 12. 2

설봉산 영월암 대웅전 뒷편으로 높이 약10m 두께 4m가량의 동남간을 향한 바위면에 선각되어있는 이 磨崖佛(마애불)은 높이가 9.6m 어깨폭이 3m가량으로 규모 면에서 관내에서 제일 큰 불상이다.

설봉산 영월암 대웅전 뒷편으로 높이 약10m 두께 4m가량의 동남간을 향한 바위면에 선각되어있는 이 磨崖佛(마애불)은 높이가 9.6m 어깨폭이 3m가량으로 규모 면에서 관내에서 제일 큰 불상이다.

머리는 승려모양의 맨머리여서 地藏(지장)보살의 상으로 여겨지며, 얼굴은 둥근 형태의 살이 찐편이며 입이 커서 투박한 느낌을 준다. 목에는 三道(삼도)가 있고, 왼손은 가사자락을 움켜쥔 모습으로 왼손으로부터 늘어진 가사의 주름이 무릎 아래부분까지 늘어져 있고 오른손은 가슴 앞에 올려 손바닥을 보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힌 편이지만 두상과 양손 등 전체적인 표현이 도식적이며 바위의 석질이 무른데다 오랜세월을 두고 비바람에 씻겨 윤곽이 희미하나, 햇살을 정면으로 받은 아침나절에는 근엄한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얼굴과 양손을 보다 정성들여 양각 수법으로 처리하고 나머지 부분은 선각으로 대충 처리한 점등 造成年代(조성년대)는 고려중기로 추정되고 있다. 고려말 고승인 나옹선사가 부모님을 천도하기 위해 조성한 것이라고 전해오고 있으며, 1984년 12월2일 보물 822호로 지정되었다.

태평흥국명 마애보살좌상 (太平興國銘 磨崖菩薩坐像)

- 소재지 : 이천시 마장면 장암리 183-1

- 지정번호 : 보물 제982호

- 재료 : 화강암

- 규모 : 높이 3.2m 어깨폭 1.2m 두께 1.47cm

- 시대 : 고려 경종6년

- 지정일 : 1989. 4. 10

장암2리 마을에서 남쪽으로 약 500m 떨어진 도로변 이천의 명산인 도드람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 磨崖佛(마애불)은 미륵바위로 불려지는 커다란 화강암에 조각된 것으로 바위 뒷면에 「太平興國六年(태평흥국6년) 辛巳二月十三日(신사2월13일)…香徒(향도)…」라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어 고려경종 6年(981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화불이 새겨진 높은 보관을 쓰고 손에는 연꽃 가지를 들고 오른발을 내려 仰蓮座(앙연좌) 위에 놓고 왼발은 무릅 위에 올려놓은 반가상이다. 얼굴은 사각형에 가깝고 넓은 이마 짧은 듯한 두 귀 두꺼운 입술은 둔중한 느낌을 준다. 양 어깨 위에 通肩衣(통견의) 法衣(법의)가 희미하게 선각되었고 가슴에 장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연꽃을 든 오른손은 신체에 비해서 왜소한 편이다. 이 보살상은 통견식 불의에 높은 보관을 쓰고 연꽃 가지를 손에 든 톡특한 형식의 관음보살로 지방색이 짙고 조각성은 떨어지지만 10세기에 조성된 紀年銘(기년명) 조각으로 다른 동시대 불상과 비교연구 자료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불상 전체 높이는 3.2m 어깨폭은 1.2m 무릎폭은 1.47m의 규모인데 이는 인도의 아잔타 반가상보다 높이가 0.8m 큰 세계 최대 반가상으로 평가된다. 1982년 단국대학교 정영호박사팀에 의하여 조사 보고되어 1986년 4월 14일 이천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되었다가 1989년 4월 10일 보물 제982호로 지정되었다.

이천 소고리 마애여래좌상 (利川 所古里 磨崖如來坐像)

- 소재지 : 이천시 모가면 소고리 산 91-9

- 지정번호 : 경기도 지방유형문화재 제119호

- 재료 : 석조

- 규모 : 높이3.7m 어깨폭 2.4m 무릎쪽 2.7m

- 시대 : 통일신라

- 지정일 : 1984. 10. 25

지난 1979년 12월 이천문화원이 실시한 문화재현지조사를 통해 그 가치가 확인되어 알려지게 된 이 磨崖如來像(마애여래상)은 모가면 소고리에서 서쪽으로 1km 가량 떨어진 작은 산골짜기 안에 있는데, 인근에서는 마국산 줄기인 이 곳을 부처박골 이라고 부르며, 불상이 새겨진 바위를 부처 바위라고 부르고 있다.

불상은 높이 7m가 넘고 동쪽을 향한 넓고 편편한 바위면에 선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선이 정교하고 몸에 균형이 잘짜여져 있으며, 仰蓮座(앙연좌)위에 결가부좌한 당당한 모습이 미술사적 측면에서 볼 때 관내제일이라 할 만하다. 머리는 소발형에 큼직한 육계가 있으며 얼굴은 둥굴고 눈은 행인형으로 가늘며, 입술이 작고 미소를 띠고 있어 표정이 자애롭다. 통견으로 된 法衣(법의)의 자락이 양쪽 어깨와 팔에 걸쳐 무릎에 이르기까지 유려하게 흐르고 있으며, 手印(수인)은 양쪽 손을 가슴앞에 올려 손바닥을 안으로 향하여 각각 중지와 엄지를 마주대고 있는 듯 여겨져, 아미타여래의 九品印(구품인) 중에 中品(중품) 중생의 手印(수인)을 취한 것으로 보여진다. 표현된 선의 형태가 오랜 세월 풍우에 마멸되어 희미하여 오른손 수인의 식별이 육안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고, 어깨가 넓고 둥글며 풍만하다. 두광은 머리 주위로 일곱겹의 동심원을 둘러 화사한 느낌을 주며, 몸 주위로는 두겹의 선을 둘러 신광을 표현하였다. 仰蓮座(앙연좌)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부드러운 선각으로 표현된 전체적인 인상이 회화를 대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불상을 조사한 단국대학교 정영호 박사는 원만한 얼굴 표정과 당당한 어깨, 잘 짜여진 동체와의 비례로 볼 때, 9세기경부터 유행한 통일신라의 선각 마애불의 한 계통으로 볼수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마애불의 조성연대는 통일신라말인 9세기경으로 추정되며, 불상이 결한 手印(수인)으로 미루어 아미타여래의 상으로 짐작된다.

이천 향교 (利川 鄕校)

- 소재지 : 이천시 창전동336

- 지정번호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2호

- 규모 : 명륜당 37.65㎡, 대성전 58.87㎡, 동서무각 12.83㎡

- 시대 : 조선태종 2년(서기1402년)

- 지정일 : 1983. 9. 19.

이천시 창전동 336번지 망현산 아리산, 향교산, 또는 위후산 밑에 자리잡은 이천향교는 조선개국 11년 임년(西紀 1402年, 太宗2)에 당시의 감무 변인달이 신축했으며, 이천시 중심가에 인접해 있으면서도 우거진 녹음속에 둘러싸여 심산유곡과 같은 풍치로 한 여름이면 인근 주민들을 위한 휴식처가 되고 있다.

향교와 비슷한 제도는 고려시대에도 있었지만 조선건국과 함께 유학을 바탕으로 하는 (교학쇄신정책을 폄으로써 전국적으로 크게 확산되는데, 이천이 도호부로 승격된 세종 26년(西紀 1444年)이후 예에 따라 이천향교는 관헌이 교수 1人을 두고 교생정원은 90명이었다. 양촌 權近(권근)이 지은<이천신치향교기>에 의하면 신사년(西紀 1401年)봄 감무로 부임한 변인달이 지금의 안흥동에 있던 안흥정사에서 학생들을 모아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보고, 절을 학교로 만들 수 없다고 하여 자신이 직접 향교를 세울 자리를 물색하던 중 지금의 위치에 터를 잡으니, 두 물줄기가 합류하는 지점으로 여러 산에 둘러싸여 형세가 그림과 같았다고 한다. 공무의 틈을 이용하여 백성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신이 직접 감독하니, 임오년 7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한 달이 지나지 않아서 완성 되었으므로 8월 상정에 석전의 예를 봉행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수백 년을 내려오는 동안 수차례의 중건을 거친 기록이 남아 있고, 문헌에 의하면 옛날의 규모는 지금보다 컸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규모는 대성전이 겹쳐 맛배집 형태로 58.87㎡이며, 東 (동무)와 西 (서무)가 각각 12.83㎡로 되어 있고 이들을 둘러싼 담장과 문으로 되어 있으며 문 왼편 밑으로 홑처마 맛배집 형태의 명륜당은 37.65㎡의 규모이다. 1945년 5월에 조직된 이천시 유도회에서 지금까지 관리해 오고 있는데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에는 이천지역의 유림들이 이곳에 모여 석전제를 연다.

이천 백송 (利川 白松)

- 소재지 : 이천시 백사면 신대리

- 수종 : 상록침엽교목

- 시대 : 수령 220년

- 품격 : 천연기념물 253호

- 형태 : 반송형(盤松形) 높이 16m, 둘레 2.4m

백송은 소나무과에 속한 바늘잎 상록수로서 짧은 가지 끝에 세가닥의 잎이 뭉쳐나고 끝이 뾰족하며 짧다. 나무껍질은 백색이고, 껍질조각이 저절로 박락(剝落)되며, 잎은 세 개가 삼엽(三葉)으로 붙어 피어난다.

수꽃이삭은 긴 타원형 암꽃이삭은 달걀 모양인데 5월에 꽃이 핀다. 솔방울은 달걀 모양이며 종자는 조금 큰 편이고 이듬해 10월에 익는다. 학원사 대백과사전에서 중국이 원산지로 인가 부근에 많이 심는다고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드물게 자라고 있는

희귀종으로서 발견되는 대로 지정보호를 받고 있는데 전국을 통털어 서울에 통의동, 원효로, 제동, 수송동 등 네그루가 있고 밀양, 보은, 예산에 각각 한그루, 그리고 이천의 백송 등 모두 8그루가 있다. 백사면 신대리 부락 뒷동산에 있는 이 백송도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 253호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나무의 높이는 16m 가량이며 밑둥치에서 부터 두 그루로 갈라져 옆으로 잔가지를 느린 모양이 보기에 좋다.

수령은 220여 년으로 추정되며 확실한 유래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 마을 노인들에 말에 의하면 전라감사를 지낸 민달용의 묘를 이곳에 안치한 후 그 후손들이 묘앞에 기념으로 심은 것이라고 한다.

반룡송 (蟠龍松)

- 소재지 : 이천시 백사면 도립2리 201-1번지

- 수종 : 소나무과

- 시대 : 수령 480년

- 품격 : 천연기념물 제381호

- 형태 : 높이 4.2m, 둘레 1.8m

신라 말 풍수지리의 대가로 유명한 도선국사가 팔도의 명당을 두루 찾아 다니다가 이 곳 도립리를 비롯하여 함흥, 서울, 강원도와 충청도 계룡산에 반룡송 한 그루씩 다섯 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그 후 함흥에서 이태조, 서울에서는 영조대왕, 계룡산에서는 정감록의 주인인 정감이 태어났다고 하며, 강원도에 심은 나무는 죽어 버렸고 마지막으로 백사면 도립리의 반룡송만 남았기에 머지않아 이 근처에서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백사면 일대에는 예전에는 문과 급제자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지금도 고등고시 합격자가 많이 배출된다고 한다. 이 소나무는 하늘로 오르기 위해 꿈틀거리는 용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여 반룡송 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며 혹자는 일 만년 이상 장수할 용송이라 하여 만년송(萬年松)이라고도 한다. 또한 영험이 깃든 나무이기 때문에 가지를 꺽거나 껍질을 벗기는 따위로 나무에 해를 입히는 사람은 심한 피부병을 앓게 된다는 속설도 전해오고 있다. 이 나무는 유별난 나무 형태에 대한 보호가치가 인정되어 지난 '96년 12월에 천연기념물 381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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